유럽의 중앙부에 위치한 독일연방공화국(Bundesrepublik Deutschland)으로 면적은 356,885㎢(한반도의 1.6배)이며 인구 8,200만명, 수도는 베를린이고 인구밀도는 ㎢당 228명이다.
인구의 대부분은 게르만족이고, 유태인·슬라브인·위그노인 등의 소수민족이 있다. 언어는 고지독일어(高地獨逸語)와 저지독일어(低地獨逸語) 중 일반적으로 고지독일어를 표준어로 삼고 있으며, 16세기에 루터의 성서번역에 의해 신고지독일어(新高地獨逸語)가 확립되어 방언의 차이가 많이 줄었다.
종교는 신교와 구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신교는 주로 북부와 동부에 분포하여 전체 인구의 약 51%가 믿고 있으며, 구교는 주로 남부와 서부에 분포하여 전체 인구의 약 48%가 믿고 있다. 기후는 서유럽의 해양성 기후와 동유럽의 대륙성 기후의 중간형이다.
독일은 유럽의 중북부에 위치하며 북쪽으로 북해·발트해에 면하고 덴마크와 접경하며, 동쪽으로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남쪽으로 오스트리아·스위스, 서쪽으로 프랑스 및 베네룩스 3국과 접경한다. 1970년 동·서독은 관계정상화를 위한 기본조약에 조인하여 현 국경선을 상호 승인할 것을 약속하였으며, 1974년 6월에 이르러 동,서독이 UN에 동시 가입하였으며,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동서냉전체제의 해빙과 구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에 힘입어 독일민족은 재빨리 역사적인 재통일을 성취하였다. 1990년 3월 18일 구 동독 인민의회의 결정으로 동독지역이 1990년 10월 3일에 흡수통합되어 독일연방공화국으로 통합되었다. 이로써 독일은 16개 주로 구성된 연방국가가 되었다. 서독은 강력한 국가였지만 통일이 되니 통일 분담금이 많이 들어갔다. 동독 사람들이 통일된 독일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 동독을 그리워하는 상황도 일어났고 서독 정부는 이들을 달래기 위해 베를린에 동독 박물관을 만드는 등 동독의 흔적들을 최대한 보존하고 있다. 동독의 상징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있지만, 금지되어 있지는 않다. 통일 이후 약간의 경제적 혼란을 겪었으나 주요산업인 자동차, 화학산업을 기반으로 건실한 경제 기반을 구축했으며, 통일이후에는 EU의 중심지로서 프랑스와 함께 EU를 이끌고 있다.
독일과 한국은 1883년 한·독수호조약의 체결로부터 시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 냉전 당시에는 독일 통일 이전까지 동독과는 북한이, 서독과는 남한이 각각 외교 관계를 수립했고, 양국 관계는 1990년대 김대중 대통령 취임 이후 최상의 협력 관계로 승격되었다. 독일은 한국의 14위 수출국이며 유럽연합 내에서는 2위 수출국이자 1위 수입국이다. 한국과 유럽연합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이후 교역량은 꾸준히 증가해왔으며, 한국의 대독일 주요 수출품은 자동차, 건전지 및 축전지, 반도체이며 수입품은 자동차, 농약 및 의약품, 계측제어분석기 등이다. 주한 독일문화원에서는 독일과 독일 문화를 알리고 양국 간 문화교류를 위한 다양한 문화 행사를 지원하고 있다.
베를린은 1230년에서 1240년 사이 브란덴부르크의 후작 가문에 의해 세워졌다. 15C 브란덴부르크 제국의 수도였으며 이후 1871년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하면서 세운 독일 제2제국의 수도가 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후 1945년까지 2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었고, 제2차세계대전으로 베를린은 동, 서로 분리되어 동베를린은 舊동독의 수도로, 서베를린은 서독의 11개 연방주 가운데 하나로 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페허가 된 베를린은 프랑스의 꼬르뷔지 등의 유명한 건축가에 의해 현대적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20C 들어 학문 예술의 전성기를 맞아 유럽 최대의 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독일 통일과 더불어 다시 독일의 수도가 된 베를린은 신생 독일의 중추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수십년 동안 베를린은 동서냉전의 중심지였으며 독일분단의 상징이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이 설치(1961년 8월13일)된지 28년만에 붕괴되면서 독일은 통일이 되고, 베를린은 통일독일의 수도로 되었다.
독일 베를린은 분단, 통일, 그 과정에서의 유대인 학살이나 나치, 독재 등 역사의 스토리도 많을 뿐더러 문화와 예술등 알아야할 것들도 많고 역사를 증명해주는 흔적들도 많은 도시입니다.
유럽의 서머타임제(일광절약시간제)가 3월27일부터 시작된다. 이에 따라 독일, 프랑스, 벨기에 등 유럽 대륙과 한국과 시차는 8시간에서 7시간으로 줄어든다. 영국과 포르투갈 등은 9시간 차에서 8시간 차가 된다. 유럽지역 서머타임은 매년 3월 마지막 일요일 오전 2시에 개시돼 10월 마지막 일요일에 해제된다.
도슨트 투어로 베를린 장벽 이해의 핵심인 베를린 월 메모리얼 전체를 도슨트(전문해설자) 안내 형식으로 안내해 드립니다. 베를린을 깊이 알고 싶으신 분이라면 꼭 해봐야할 베를린 여행중 하나입니다! 이곳에서 1시간여 설명을 들으시고 나면, 베를린을 바라보는 관점이 180도 달라지실 것입니다. 이후 베를린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입니다.
베를린여행코스에서 빠지지 않는 베를린 랜드마크, '브란덴부르크 문'은 프로이센의 국왕이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명령을 받은 칼 고트하드 랑한스(Karl Gotthard Lang-hans)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서 모티브를 따와, 1788년에서 1791년 사이에 건설하였습니다. 브란덴부르크 문 위에는 요한 고트프리드 샤도우(Johann Gottfried Schadow)가 디자인한 4마리의 말이 끄는 콰드리가(Quadriga)조각상이 있습니다.
베를린 여행 코스 중 가장 유명하기도 한 '브란덴부르크 문'은 20세기에는 동서독 분단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독일 재통일 이후에는 독일통일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독일 연방의회 건물은 동서독 분단 당시 경계 선상에 있던 건물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완전히 파손되어 재건하였으며, 이곳에서도 과거 베를린 장벽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샤를로텐부르크 정원은 넓이가 무려 32헥타르. 샤를로텐부르크 궁전은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1세가 아내를 위해 특별하게 지은 여름궁전.
베를린 여행 코스 중 필수 방문지 이기도 하죠. 베를린에는 많은 유대인 관련 유적지가 있지만 홀로코스트는 유대인을 추모하기 위해 꼭 들려야 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가로세로 규격이 같은 콘크리트 구조물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돌 안쪽으로 들어가면 돌의 높이가 높아집니다. 실제로 이 안에서 몇 바퀴 돌다 보면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길을 잃게 되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갑갑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베를린 여행에서 가슴이 먹먹한 느낌을 갖을수 있는 몇곳이 있는데요 그중 하나 인것 같습니다.
베를린 여행에서 빠질수 없는 베를린 랜드마크이기도 한 훔볼트 대학 입니다. 베를린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두 번째로 학생수가 많은 대학입니다. 프로이센 왕국의 자유주의적인 교육 개혁가이자 언어학자였던 빌헬름 폰 훔볼트에 의해 1810년 베를린 대학교(Universität zu Berlin)로 창립되었습니다.
베를린의 역사를 배우게 되는 이곳 베를린 여행에서 빠질 수 없겠죠. 이곳은 과거 게쉬타포(Gestapo), SD, SS, RHSA로 이어지는 독일의 비밀경찰 본거지였던 곳입니다. 2차 대전 이후 파괴된 기존의 건물터를 헐고, 현재는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 시절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건설한 문서기록 전시관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곳 전시실을 둘러보는 것 만으로도 나치시절의 끔찍했던 사건과 독일인의 역사 반성에 대한 깊이를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베를린 최대의 번화가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그만큼 베를린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현대적인 건물이 즐비한 이곳 포츠담 광장은, 그래서 현대 건축물의 박물관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과거 동서독 분단 시절 이곳은 베를린 장벽이 지나가는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던 곳입니다. 포츠담 광장 뒤편에는 베를린 장벽의 실제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개발과 보존의 균형이 잘 이루어진 곳으로 평가되고 있기도 합니다.
통일정은 진짜 한국식 정자입니다. 2015년 설치되었으며, 한국의 통일을 기원하면서 실제 통일의 장소인 포츠담 광장에 설치하였으니 그 의미가 매우 뜻깊다 하겠습니다.
영문으로는 베를린 성당으로 표기하지만, 정식 명칭은 베를리너 돔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개신교 교회 건물로 사용 중인 곳입니다. 베를린을 대표하는 3대 상징 중에 하나이기도 한 베를리너 돔은 베를린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 하나입니다. 박물관 섬에 위치하고 있으며, 왼쪽에는 구박물관(Altes Museum)이 있고, 뒤편에는 동독박물관(DDR Museum)이 있습니다.
박물관섬을 이루는 다섯 동의 건물 가운데 처음 세워진 구박물관(Altes Museum)은 당대 최고의 건축가였던 칼 프리드리히 쉰켈이 설계를 맡았다. 베를린 최초의 공공 박물관으로 1830년 공식 개관한 구박물관은 로마의 판테온을 본뜬 우아한 원형홀과 18개의 이오니아식 원주가 떠받치는 주랑이 인상적이다. 지금은 그리스·로마시대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유럽 최고의 광장 젠다르멘마르크트
베를린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광장.
오늘날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는 이런저런 광장을 품고 있다. 중세 때부터 도시의 주요 기능과 시민들의 삶이 광장을 중심으로 꽃피었기 때문이다. 베를린에도 파리 광장, 포츠담 광장, 라이프치히 광장 등 많은 광장이 있다. 그러나 수많은 베를린의 광장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젠다르멘마르크트(Gendarmenmarkt)'다. 베를린을 대표하는 콘서트홀의 하나인 콘체르트하우스와 두 개의 웅장한 교회가 삼면에서 광장을 품고 있다.
국립 오페라 극장과 성 헤트비히 대성당, 구 도서관, 구 궁전으로 둘러싸인 화려한 광장으로 원래는 오페라 광장(Opernplatz)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이 광장은 고대 로마의 장엄함을 본떠 설계된 지역인 포룸프리데리키아눔의 중심점으로 삼기 위해 건설됨. 1933년 5월 히틀러의 유명한 분서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를 기념하는 기념관이 광장에 세워졌다.
독일 역사박물관(Deutsches Historisches Museum)은 구 건물에 본 전시관이 있고, 유리 피라미드 같은 게 있는 신 건물에 특별관이 있는 구조였다. 유럽의 역사, 특히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의 역사는 다 짬뽕되어 있어서 국가 개념이 희박한 거 같다. 근대에 들어서야 독일이라는 나라가 정립되었으니.
아무튼, 로마, 프랑크 왕국, 바이마르 왕국 등 역사책에서 봤던 왕조 이름이 나오며 (현) 독일 땅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시대별로 전시 돼 있었다. 그리고 나치 시대. 부끄러운 과거도 역사의 일부.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가감 없이 역사를 다루어 전시하였다. 서양사를 좀 더 알고 봤으면 더 재밌을 거 같았다.
동서독 분단 시절 당시에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간을 왕래하던 미군 측 검문소입니다. 이곳에서는 왜 이곳이 체크포인트 찰리로 불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체크포인트 찰리의 긴박했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베를린 여행의 시작점이기도 하며, 베를린 TV타워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며, 교통이 편리하고 상점과 음식점이 많아서 이곳을 여행의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한국 첩보 액션 영화 '베를린'에서는 광장이 아닌 전지현(련정희 역)이 지하철에서 내리는 장면이 촬영된 곳입니다.
베를린은 의외로 물의 도시라서 베를린 안에는 수 많은 다리가 있지만, 이 오버바움처럼 독특한 모양의 다리는 또 없을 것입니다. 약간 러시아풍의 다리는 동서독의 분단의 상징이자 통일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프로이센이 덴마크, 오스트리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864~1873년에 세워진 전승 기념탑이다. 원래 독일 제국 의회 의사당앞에 세워진 것을 1939년 나치스가 이곳으로 옮겨왔다. 탑의 꼭대기에는 황금 천사상이 있다. 이 천사상은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를 표현한 것으로 프리드리히 드리케가 조각한 것이다. 아래의 기단에는 프로이센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과 1938년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함락시킨 것을 기념하는 장면이 장식되어 있다.
분단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독일. 다시금 독일은 통일을 하고 일부 베를린 장벽은 파괴되고, 다수의 베를린 장벽은 그대로 남게 되었어요!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는 남은 베를린 장벽에 세계 각국의 미술 작가들이 그림을 그려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킨 곳이에요! 1990년에 진행된 이 작업은 105개의 그림으로 완성되었고, 이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야외 공개 갤러리가 되었어요!
독일 맥주
현재 독일에는 약 1,300개의 맥주 양조장이 있다. 또한 도시마다 그 지역 고유의 맥주를 만날 수 있다. 독일에는 괴테가 즐긴 맥주를 여전히 생산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맥주 브랜드가 많다. 특히 중세 시대 문화와 학문을 담당하던 수도원에서 맥주 개발과 생산에 애썼는데, 이 때문에 독일 고딕 서체를 사용하고 문장을 강조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1 마이젤 바이스(Maisel’s Weisse) 1887년 마이젤 형제가 만든 맥주다. 원형 로고 안에 사방으로 뻗친 보리가 재미나다. 독일 바이로이트(Bayreuth) 지역을 대표하는 맥주다.
2 쾨니히 루드비히 바이스비어 헬(K nig Ludwig Weissbier Hell) ‘루드비히 왕의 밀 맥주’라는 뜻이다. 화려한 장식과 문양으로 왕의 고귀함을 표현했다.
3 바이엔슈테판 헤페 바이스비어 (Weihenstephaner Hefe Weissbier) 뮌헨 북쪽에 있는 작은 도시 바이엔슈테판 지역에서 생산하는 맥주다. 725년에 세워진 베네딕트 수도원의 바이엔슈테판 양조장은 현존하는 양조장 중 가장 오래된 양조장이다. 1000년이 넘었다.
4 크롬바커(Krombacher) 독일에서 가장 큰 개인 소유의 맥주 회사다. 자그마한 크롬바흐 마을에서 대대로 가계 경영으로 맥주를 만든다.
5 쾨스트리처(K stritzer) 1543년부터 생산된 맥주 쾨스트리처는 독일의 대문호 괴테와 19세기 후반 독일 통일을 이룬 재상 비스마르크가 즐긴 맥주로 유명하다.